[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89년 해직교사는 언제 원상회복시킬 것인가?'

노웅희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0/09/07 [14:15]
교육칼럼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 '89년 해직교사는 언제 원상회복시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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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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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가폭력의 피해자 전교조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

“해고자 원직복직 등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를 즉각 취하라!”

 

▲ 김용택 선생     ©

9월 4일 전교조가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 취소에 부쳐’라는 보도자료를 내고 “대법원 선고 판결의 취지에 따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를 취소하였음”이라고 밝힌데 대한 입장이다. 6년도 훨씬 더 지난 세월호 참사가 그렇듯이 전교조 법외노조문제 또한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무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이 국정농단 사법 거래의 산물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에도 “억울한 사람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그 책임을 사법부와 입법부에 미루고 있는가.


<1989년 해직교사 원상회복은...?>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7월 10일 주례 라디오 방송에서 "노조 결성을 주도하는 일부 교사들이 이른바 '참교육'을 내세워 교실에서 6·25는 북침이니, 현 정부(노태우 정부)는 반통일 세력이니, 노동자·농민·도시 빈민·학생과 굳게 연대하여 줄기찬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고 그릇되게 가르치는 것은 방치할 수는 없다" 이 한마디로 시작된 전교조에 대한 탄압은 행정기관, 검찰, 경찰, 안기부, 보안사, 전국 시·군 교육청과 시·도 교육위원회, 각급 학교 등 총 11개 기관이 총동원돼 ‘전교조 죽이기’가 시작됐다. 결과 전교조활동과 관련해 구속된 교사만 47명, 징계위에 회부된 사람이 1,794명이다. 전교조에 탈퇴각서를 거부한 1,527명의 교사가 해임되었다.


전교조 관련으로 구속됐거나 파면 해임된 교사 그들은 누군가? 당시 문교부에서 일선 교육청으로 내려보낸 공문에 담긴 공문에 '전교조 교사 식별법'에는 “촌지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신문반, 민속반 등의 특활반을 이끄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였다.

 

그들을 찾아내 교단에서 몰아내기 위한 ‘전교조교사 식별법’이라는 이름만 붙이지 않았다면 표창대상으로 착각할 사람이다. 이런 교사를 쫓아내고 어떤 사람이 교육을 담당한 것인가? 이들이 비록 다시 복직을 했지만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원상회복을 하지 않고 있다.


11개정부기관이 총동원돼 내쫓은 1,527명의 교사들을 31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부의 폭력에 희생된 1,527명이란 전교조에 가입해가 탈퇴각서를 내지 않은 교사들이다. 그밖에도 사립학교 민주화투쟁과 정권이 빨갱이로 몰아 내쫓은 교사까지 합하면 무려 1700여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내쫓긴 것이다. 비록 그들이 김영삼정권의 ‘조건부복직방침’에 따라 1994년 복직은 했지만 그들이 복직시킨 교사는 원상회복이 아니라 신규채용형식의 굴욕적인 복직이었다. 5년간 해직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해직교사들은 울면서 이 굴욕적인 복직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교조 관련 해직 1호, 구속 1호 신맹순선생님. 그는 해직당시 48세였고 고등학생 2명과 중학생 2명의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당시 고등학교 등록금은 50만원이었다. 그 해 8월 25일, 그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나왔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임옥순 씨는 적금과 보험을 깨고 세간살이를 모두 팔았고 급기야 이웃에게 아이들 학교 갈 차비를 빌리기도 했다. 빨갱이 전교조 교사라고 연일 방송에 보도되고 손을 여러번 벌리다보니 사이좋았던 이웃과도 멀어졌다.

 

가난은 그렇게 가족의 생계를 위협했다. 어느 날부턴가 아내는 밤늦게 나가서 아침에서야 들어왔다. 신 교사는 아내가 왜 그러나 싶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아내를 기다렸다. 새벽 3시경이 됐는데 어떤 사람이 집 앞에 고물을 가득 싣고 왔다. 아내였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가는 버스비를 줄려면 밤새 모은 고물을 내다 팔아야 했던 것이다. 그는 아내를 붙잡고 한없이 울었다. 다음 날부터 신교사는 아내와 함께 고물을 줍는 일을 했다. 그때가 89년 늦여름 8월 20일이다. 그때부터 줄곧 30년간 아내와 함께 고물을 주워서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89년 해임 파면된 교사, 그들은 이제 대부분 교직을 떠난 6~70대 할아버지들이다. 5년간의 해직기간은 해직교사들은 대부분 신맹순선생님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 보상없이 신규교사형식으로 특별채용된 선생님들은 5년간의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해 진 부채를 내고 연금 혜택조차 받지 못해 병고와 가난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전교조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박근혜대통령조차 “전교조도 처음 정신으로 가야한다”고 해 전교조가 출범한 당시의 당위성을 인정했다. 무너진 교육을 살리겠다고 나섰다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살아온 1700여명의 해직교사들... 이들을 방치하고 정의를 말할 수 있는가?


<해직교사를 방치하고 정의운운할 수 있는가?>

 

2000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5조 6 '불이익행위 금지 등'의 조항과 이 법 시행령 제5조의4 '차별대우 및 불이익 행위의 예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해직됐던 전교조 교사들은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 '민주화운동관련자 증서' 달랑 한 장만 주어졌을 뿐 그 외에 어떤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제 그들 중 그 절반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남은 선생님들은 원상회복추진위원회(회장 황진도)를 꾸렸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고 있다. 국정농단세력들이 만든 법외노조를 회복시키는데 7년이나 법원. 순리대로 말하면 89년 해직된 교사들의 원상회복부터 시켜야 옳다. “반칙이 없는 세상,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은 왜 침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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