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모의 詩로 세상 열기]

'오래된 습관' (강준모)

김애령 기자 | 기사입력 2020/10/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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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습관' (강준모)
김애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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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1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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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습관 (강준모)

 는 큰 주머니인 양 가방을 항상 메고 다닌다

 

 내 가방엔 사계절 같은 옷만 입는 그림자가 산다
 길을 걸으면 그림자는 가방에서 나와 나를 따른다
 해가 지면 그림자는 어느새 가방으로 숨는다

 

 내 가방엔 허기가 빈 도시락처럼 달그락거린다
 마저 읽지 못하고 페이지 끝을 접어놓은 저녁이 있다
 시 나부랭이같이 쓰다 만 어젯밤이 구겨져 있다

 

 술 먹고 가방을 술집에 놓고 나온 적이 몇 번이던가
 그때마다 나를 잃고 혼자 버려진 그림자

 

 회기역 플랫폼에 의자가 길게 눕는다
 가방이 그림자를 부르는 시간이다

 

나는 그림자를 메고 전철을 기다린다.

 
(시집 <오래된 습관> 中)

 

 시작(時作) 배경

 이 시를 쓴 시절은 아마 파주에서 회기까지 출퇴근하던 때였을 것이다.
 
 긴 시간을 대중 교통에 의존하다 보니 가방은 필수가 아닐 수 없다. 가방에는 전철을 타면서 읽을 시집이나 읽다만 책 등이 있었다. 간혹 아내가 아이들용으로 김밥을 싸게 되면 나도 김밥의 수혜자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회기역 플랫폼에 해가 기울어 길게 들어 올 때다. 나의 키보다 긴 그림자가 석양 반대편으로 나를 탈출해 도망가려고 했다. 이때는 비교적 내가 나를 싫어했던 시절이었다. 집이 머니 술을 한 번 먹으면 그 피해가 심해 아내에게 심각한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시절이었다.
 
전철이 들어오면 그림자를 걷어들여야 했다. 아니, 그래도 그림자라고 지가 알아서 가방 속으로 들어오곤 했다. 삶이 그런 것 같다. 그림자를 가방 속에 잘 넣고 자주 꺼내서 읽다가 환승 때가 되면 읽던 끝을 접어서 표시하고 소중하게 다시 넣어야 한다는 것을,
 
요즘 정문 안전지도를 서면 학생들이 언덕을 자기만한 가방을 메고 손바닥으로 부채질하면서 오른다. 가방 속에 있는 그림자들이 너무 무겁고 말이 적은 것 같다. 나는 오랜 시간 교사를 하면서 넘 무거운 그림자만 가방에 넣어주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학생들이 멘 그림자가 바람처럼, 구름처럼 발랄한 것을 생각한다.

 

이제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정문 안전지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강준모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창작21] 신인상 등단. 시집 <오래된 습관> 공동작품집 <발톱을 깎다> <수상한 가족사> <드문드문 꽃> . 창작21작가회 사무국장. 현재 경희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 중.

 

                             

 

 

 

 

 

30년간 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교육활동을 한 후 명퇴하고, 지금은 그 동안의 교육활동을 성찰하며 교육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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