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수현의 비망록 16. 1978.06

노웅희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0/10/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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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수현의 일기
해병 수현의 비망록 16. 1978.06
노웅희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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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0/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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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오늘
14개월만에 휴가를 간다. 동기들은 25일짜리 휴가를 갔지만, 그 놈의 훈련을 받느라 15일짜리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선임들은 구두를 삐까뻔쩍하게 닦아주고, 해병링도 빌려준다. 기리가 어찌나 잘 잡혔는지 손을 베일듯하다. 그러면서 한마디씩 한다. 떡은 2말은 해야 중대원들 입에 붙여볼 수 있을 것 같다. 화랑 담배는 좀 질리는데 양놈 담배 맛은 어떨까 몰라. 치킨 튀기는 기술이 달라졌다더라 등등 하수구 박박 기던 포항 죽도시장을 지나 고향에 다가올수록 눈물이 난다. 버스에서 눈물 훔치느라 풍경이 어땠는지 하나도 기억이 없다. 참 눈물도 흔하다. 훈련소에서 고향이 그리워도부르며 눈물 흘리고, 자대 배치받고 뺑뺑이 돌면서 동기와 눈물흘리고, 휴가가는 길에 또 눈물이다.

 

집보다 먼저 부산에서 내려 학교를 가봤다. 군대 가기 전에는 잘 가지도 않았는데... 은경이 보고싶어서 간다. 자식이 편지 쓰라고 부탁을 그리했는데 편지도 안 써 줬다. 애인이라도 만들어 둘걸 그랬다. 맨 노느라고 여학생들에게는 신경도 안쓰고, 그 놈의 학회가 뭔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 배우느라 사귈 기회가 없었다. 이름은 거창하다. 경제철학회!

 

자본주의 구조와 발전이라는 도대체 알아듣지도 못할 용어를 써가면서, 선배들은 씨부렁거렸다. 뭔 놈의 이론이 그리도 중요한 건지. 그보다는 차라리 삐라 한 장이라도 더 뿌리자고 치기를 부렸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이론 무장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운동을 할 수 있단다. 참 불만이었다. 이론 무장보다는 현실 속에서 부대끼면서 겪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변도 해 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기껏 민중의 삶 체험을 위해 영도 지역으로 나가보잔다. 젠장할 그 곳의 삶도 똑같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비록 속이 다 비치는 변소에서 아침이면 줄지어 용변을 보기도 하는 생활이지만 기쁜 일이 있으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픔을 나누는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인들의 공동체라는걸. 비록 삶이 바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와 가족들 간의 정을 쌓을 시간은 부족할지언정 가족 사랑은 지극하다는 것을.... 자기들은 대학 생활 하면서 여유있게 지내니 가난한 민중의 삶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니. 제기랄... 경찰놈들한테 얻어터져보고, 해병대 가서 뺑뺑이 돌아 봐야만 현실을 인정할 수 있으려나.

 

학교 안을 뱅뱅돌아 은경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학생회 간부란다. 아니 교련 반대 시위한다고 했을 때 찔찔짜면서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던 은경이 아니다. 내가 군대 가 있는 동안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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