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우리 시대의 사용법' (이재무)

김애령 기자 | 기사입력 2020/11/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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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우리 시대의 사용법'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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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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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는 직접어법을 할 줄 모른다. '사물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라'고 쓰는 순간, 그것은 시의 언어 사용법이 아니라 산문의 그것이 되는 것이다. (본분 중에서)



- 우리 시대의 사용법(이재무)

지 봉투에 돈 들어있고 유모차에
 벽돌 한 장 들어있고 가위는
 김치나 무나 김을 자르고 방망이나
 홍두께는 밀가루 반죽이나 밀고 빈집
 대추나무 가지에 걸린 호미는
 허공을 매고 키 작은 지붕
 위에 놓인 왜낫은
 달빛, 바람이나 자르고
 식은 굴뚝 새벽이슬 매단 거미줄엔
 파란 별빛이나 걸려들어 파닥거리고
 금 간 항아리엔 빗물, 산그늘,
 새소리나 고이고 회칼은
 생선 대신 사람을 찌르고 있다

 (<데스밸리에서 죽다> 中에서)

 

 시평(詩評)
사물이나 도구들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 화자는 사물들이 용도에 맞게 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 이 시를 통해 시 언어의 사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는 직접어법을 할 줄 모른다. '사물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라'고 쓰는 순간, 그것은 시의 언어 사용법이 아니라 산문의 그것이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유모차에 /벽돌 한 장 들어있고" 라고만 표현한다. 나머지는 독자 상상의 몫이다. 유모차에 놓여 있는 것이 아기가 아니라 벽돌이면 그것의 용도는 할머니들의 허리 받침용이다. 이것을 통해 벽돌이 쉽게 밀리거나 넘어가지 말게 하기 위함까지 생각해 보거나, 폐품을 이용하는 할머니들의 알뜰 마음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거미줄엔/파란 별빛이나 걸려들어 파닥거리고" 를 보면, 거미줄엔 파리나 모기가 걸려들어야 하는데 파란 별빛이 걸려들어 파닥거린다고 한다. 일반 어법으론 가당치 않지만 시어의 사용법에선 가능하다.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화자 마음을 직접어법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산문의 의미 전달로 격을 달리하게 된다. 이 표현은 거미줄에 걸려 '빛을 잃어가는 우리 시대의 파란 희망'이 이미지로 떠올라 심상의 화면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

 

시어의 사용법은 이렇게 심상에 오래 남게 해야 하는 어법이다. 이는 시를 쓰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 강준모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창작21] 신인상 등단. 시집 <오래된 습관> 공동작품집 <발톱을 깎다> <수상한 가족사> <드문드문 꽃> . 창작21작가회 사무국장. 현재 경희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 중.

 



 

30년간 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교육활동을 한 후 명퇴하고, 지금은 그 동안의 교육활동을 성찰하며 교육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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