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어떤 풍경'

김애령 기자 | 기사입력 2020/11/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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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어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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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1/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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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무명의 무덤은 봉분이 무너져 이미 죽음조차 허물고 있다. 좀 더 길게 본다면 우리의 삶은 한 줌의 흙이 되는 것인데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검은 대리석 비석을 세우려 하고 있다. 망우산은 나에게 가끔씩 죽음의 뒤편을 놓치지 않게 하는 스승이다. 그날도 하늘은 눈의 제문으로 죽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본문 中에서)

 

 - 어떤 풍경 (강준모)

 덤들은 산비탈에 식구처럼 모여
 봉긋하게 햇살을 머금고 있다
 먼발치 아래로 아파트 단지가
 도시가스로 겨울을 나고 있다
 봉분에 덮인 눈
 나는 겨울 하늘이 쓴 제문을 읽는다
 오솔길이 무덤 사이로 혼자 오른다
 겨울을 일체 언급하지 않는 전나무
 우연히 마주 친 검은 대리석에
 어떤 햇살이 박살나고 있다
 한줌의 흙은 평등한데 생이 자꾸 개입한다
 어떤 무덤은 이미 죽음을 허물고
 망우산에 편입하고 있다

(시집  <오래된 습관> 中에서)

 

  - 작시(作詩) 배경

동네 뒷산 망우산을 자주 오른다.

 

이 산은 옛날 묘지 공원으로 무덤이 많다. 지금도 독립 운동가들, 방정환, 한용운, 최서해, 박인환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 
 
겨울에 무덤 위로 눈이 덮혀있는 것을 보면 하늘은 지상의 죽음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 도시는 반듯한 아파트를 밤낮으로 지어 세워 놓았다. 내 삶이 그렇듯, 겨울은 아파트의 난방 속에 앉아 네모난 일상에 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무명의 무덤은 봉분이 무너져 이미 죽음조차 허물고 있다. 좀 더 길게 본다면 우리의 삶은 한 줌의 흙이 되는 것인데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검은 대리석 비석을 세우려 하고 있다. 
 
망우산은 나에게 가끔씩 죽음의 뒤편을 놓치지 않게 하는 스승이다. 그날도 하늘은 눈의 제문으로 죽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 강준모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창작21] 신인상 등단. 시집 <오래된 습관> 공동작품집 <발톱을 깎다> <수상한 가족사> <드문드문 꽃> . 창작21작가회 사무국장. 현재 경희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 중.

 

30년간 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교육활동을 한 후 명퇴하고, 지금은 그 동안의 교육활동을 성찰하며 교육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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