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둥글다는 것은 (강준모)'

김애령 기자 | 기사입력 2020/12/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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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둥글다는 것은 (강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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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2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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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다니는 순댓국집 대부분은 원형 탁자를 보유하고 있다. 집 근처 우림시장 순댓국집도 스탠으로 된 원형 탁자이다. 그 위에 올려 있는 기본 양념통들도 원형이다. 원형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본문 中에서)



- 둥글다는 것은 (강준모)

 

 둥글다는 것은 처음과 나중이 만나는
 순댓국집 탁자이다
 나는 우림시장 입구에서 혼자
 순댓국을 먹고 있다
 저녁의 출출함을 달래고 있다
 이 순간 날선 근심을 내려 놓는 것이다
 망우역 비둘기처럼 거산하던 그리움이
 원탁으로 모이는 시간이다
 술 고픈 노동이 모이는 곳이다
 둥근 탁자에 모여
 고추 탕기, 들깨통, 뚝배기, 술잔, 공기밥 모두가
 둥글게 반창회를 한다
 채우고 비우고 배고프고 배부르고
 처음과 나중이 다시 손을 잡는 둥근 탁자이다
 벽에 절은 때 같은 슬픔도
 어찌 보면 벽시계의 12시와 1시 사이처럼
 갔다가는 오고 다시 가는 것일 게다
 둥근다는 것은 추억이 피고 지고
 백열등 아래서 순댓국의 둥근 탁자가
 배고픈 노동을 달래고 있는 것일 게다

 

 (강준모 시집 < 오래된 습관 > 中에서)


 작시(作詩) 노트

 페북의 표지에도 순댓국을 사랑한다고 했다. 순댓국을 꾸준하게 좋아했다.

 

 지금도 회기역 사거리 명성순댓국집을 20년 넘게 다니고 있다. 그 집 아들은 학교 제자인데 몇 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어머니를 도와 식당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순댓국집을 물려 받아 운영할 계획이 있다고 했다.

 

 내가 다니는 순댓국집 대부분은 원형 탁자를 보유하고 있다. 집 근처 우림시장 순댓국집도 스탠으로 된 원형 탁자이다. 그 위에 올려 있는 기본 양념통들도 원형이다. 원형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순댓국집에 오면 어느 음식점보다 혼자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순댓국에 빠지면 혼자 먹는 것도 불사하는 매니아들이 많은 국밥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소주에 곁들여 먹으면 그날에 쌓인 노독이 스스로 녹는다.

 

 순댓국은 서민의 국밥이다. 순댓국은 그리운 얼굴을 만났거나 그리울 때 먹는 국밥이다. 순댓국은 고추, 들깨, 양념장을 넣을 수도 안 넣을 수도 있다. 순댓국은 배고픔을  배부르게 하는 국밥이다.  순댓국은 모든 것을 탁배기에 넣어서 먹는 간편 국밥이다. 순댓국은 세상에 각진 마음을 둥굴게 하는 국밥이다. 순댓국은 천천히 먹으라고 입 천장을 데게 하는 국밥이다. 그래도 순댓국은 밥을 말아도 되고 안말아도 되는 국밥이다. 순대가 없는 순댓국도 있는 국밥이다.

 

 이래서 나는 늘 순댓국을 먹으며 이런 국밥 같은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 강준모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창작21] 신인상 등단. 시집 <오래된 습관> 공동작품집 <발톱을 깎다> <수상한 가족사> <드문드문 꽃> . 창작21작가회 사무국장. 현재 경희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 중.

 

 

 

30년간 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교육활동을 한 후 명퇴하고, 지금은 그 동안의 교육활동을 성찰하며 교육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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