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저물녘 (길상호)'

김애령 기자 | 기사입력 2020/12/29 [16:52]

[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저물녘 (길상호)'

김애령 기자 | 입력 : 2020/12/29 [16:52]

 

▲ 이 시는 언어가 갖고 있는 기표와 기의를 절묘하게 구사하는, 언어의 예술적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시는 기존의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에서 보다 다양한 언어 범주를 연결하고 확장하려는 창의를 시도한다. (본문 中에서)



- '저물녘 (길상호)'

 

 을 사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역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아 견뎌야 하는 시간

 

 우리 앞엔 아주 짧은 햇빛이 놓여

 있었네

 

 바닥에 흩어진 빛들을 긁어 모아
 당신의 빈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어둠이 스며든 말들을 부러 써내지

 않았네

 

 그저 날개를 쉬러 돌아가는 새들을

 따라
 먼 곳에 시선이 가 닿았네

 

 어디선가 바람이 한 줄 역 안으로

 도착했네

 

 당신은 서둘러 올라타느라
 아프게 쓰던 이름을 떨어뜨리고

 

 주워 전해줄 틈도 없이 역은

 지워졌다네

 

 이름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돌아서야 했던 역, 당신의 저물녘


 시평(詩評)

 이 작품은 제3회 김종삼 문학상 수상작이다. 필자의 대학원 석사 논문이 김종삼론이었다. 세월이 오래 지나 이젠 부제목도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다.

 

 김종삼 하면, 소주를 좋아하여 명을 단축한 일화도 유명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시어의 구사가 강하게 기억된다. 김종삼은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에 탁월함이 있으며 시어의 미적 부림이 뛰어난 시인이다. 이 시는 대체 김종삼의 어느 이름값에 걸맞은 것일까.

 

 이 시는 제목에 집중해서 음의 유사성을 활용하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저물녘'의 '녘'에서 '역'을 음성적으로 연상하고 그 단어들의 돗자리를 깔아 놓고 그 안에서 '이별'의 상황을 절묘하게 부리고 있다. 철저하게 '이별'을 역의 언어와 저물녘의 언어로 환산하는 집중을 보이고 있다.
 
 역이나 저물녘은 모두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아 견뎌야 하는 시간"의 언어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한 줄 역 안으로 도착했네"에서 시인의 감각적 시어가 절정에 이른다. 바람을 시각적으로 처리해서 역으로 들어오게 하고 있다. 이것은 시 전체적 이미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절묘한 정서를 부여한다.

 

 이런 표현들은 삶에 대한 철학적 깊이의 메시지가 다소 부재한다 하더라도 이별을 저물녘과 역의 언어로 변이시켜 보여주는, 감각적 서정이 주는 감동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시에 '김종삼 상'을 수여했으리라.  
 
  이 시는 언어가 갖고 있는 기표와 기의를 절묘하게 구사하는, 언어의 예술적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시는 기존의 언어가 갖고 있는 의미에서 보다 다양한 언어 범주를 연결하고 확장하려는 창의를 시도한다. 물론, 삶에 대한 깊은 인식은 동반해야 한다. 이 시를 통해 그런 점을 읽는다.

 

 - 강준모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창작21] 신인상 등단. 시집 <오래된 습관> 공동작품집 <발톱을 깎다> <수상한 가족사> <드문드문 꽃> . 창작21작가회 사무국장. 현재 경희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 중.

 

 

 

 

30년간 고등학교에서 윤리교사로 교육활동을 한 후 명퇴하고, 지금은 그 동안의 교육활동을 성찰하며 교육의 공공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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