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택 칼럼] '교회를 무너뜨리는 목사'

노익희 기자 | 기사입력 2020/09/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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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택 칼럼] '교회를 무너뜨리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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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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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운동가 임우택(퇴직교사)  

제 전광훈이 순교하겠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이 사실이 된다면 그것은 순교가 아니라 소각이라 말한다. 전광훈은 대통령이 간첩의 왕인 신영복 교수를 존경한다고 한 말을 사과하라고 한다.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 아니라고 한 말은 헌법을 무시한 것이니 사과하라고 말한다. 만일 사과를 하지 않으면 목숨을 던지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목숨을 던지는 것을 그는 순교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스스로 목사라고 하는 자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신영복 교수는 유신정권에 의해서 간첩으로 조작되어 자신의 젊음을 희생당한 분이다. 그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저서를 통해 많은 시민들에게 커다란 일깨움을 주었다. 그의 글 속에 담긴 고결한 사색의 높이는 감옥의 단장을 훨씬 뛰어넘어 감옥밖에 갇혀 있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의 벽을 허물었다. 신영복 교수를 우리 시대의 고뇌와 양심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출감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마지막 강의, 담론, 처음처럼 등의 저서들을 통해 독서 애호가들로부터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으며 고결한 정신을 추구하는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신영복 교수의 문장과 글씨는 그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추사 김정희가 있다면 우리시대에 신영복이 있다고도 말한다. 그의 글씨를 보면 글씨가 하나의 예술임을 알게 한다. 서로 의지하고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민중들의 소중한 삶을 우리는 글씨체만으로도 깨닫게 된다. 그의 글씨 중 하나인 "처음처럼"은 글자 모양만으로도 친근한 감동을 받게 된다. 전광훈도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 때는 지금처럼 오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마음을 처음 지녔던 "처음처럼"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전광훈이 믿는 기독교는 이웃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종교다. 처음처럼 글씨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네 개의 글자가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함께 어울리고 있다. 글자로 상징화된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도 더불어 사랑하며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글씨들은 혼자가 아니가 여럿이다. 그의 글씨는 즐겁게 서로 벗하며 어깨를 걸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글씨에는 전광훈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힘주어 말해야 될 이웃사랑이 시각적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글씨만으로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인지 우리에게 깨닫게 해준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사랑을 전광훈이 간첩의 왕이라 말하는 신영복 교수의 글씨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광훈이 신영복 선생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읽고 그런 말을 한다면 그는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아마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간첩이 될까봐 읽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20년 억울한 수형생활을 하면서도 삶을 고뇌하며 정결하게 살아간 사람, 죽음까지도 자신의 욕망에 끌려가지 않고 정결하게 마무리하고 간 사람을 간첩의 왕이라고 성도들을 향하여 조롱하며 거짓을 선포하는 자를 선지자라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는 자신을 선지자라 말한다. 이런 자들과는 말을 섞을 수 없다.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 아니라 말했다며 대통령이 직접 자신에게 사과하라 한다. 헌법을 무시했다고 한다. 만일 한 달 안에 사과하지 않으면 목숨을 던져 순교하겠다고 한다. 이 사람이 헌법을 읽은 사람인가. 헌법에 그날이 건국절이라고 써있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우리헌법은 성문헌법이다. 일정한 절차에 따라 문자로 표현되고 문서의 형식을 갖추어 정립한 성문헌법이다. 눈을 씻고 아무리 뒤져봐도 헌법에는 건국절이란 단어조차 없다. 있다면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말과 1948년 7월 12일에 헌법이 제정되었다는 문장밖에 없다. 

 

 전광훈은 작년부터 청와대 앞에서 철야기도를 한다며 교회 신도들을 데리고 나가 정치적 선동하면서 기독교 정당의 세를 불리려 하였으나 헛된 꿈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 너 까불면 죽어 막말을 하면서 야당 대표와 손잡고 시위대를 불려 허풍을 떨었으나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키고 진영논리를 극대화시켜 선거를 합리적 토론을 통해 건강하게 치르는 것이 아니라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목사와 장로들을 현실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였다. 기득권 세력들과 대형교회를 배경으로 헌금을 펑펑 쓰며 기독교를 정치 세력화하려다가 교회를 국민들의 걱정꺼리로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 인물이 자칭 선지자라 말하는 전광훈이다. 국민들은 선거 결과로 응답하였다.


 올봄 선거가 끝났으면 그는 조용히 자숙해야 했다. 그런데 이 무슨 짓인가. 광복절이 무슨 날인가. 남의 나라에 나라를 빼앗기고 잃었던 국권을 회복한 날이다. 조국 광복을 위해 피 흘린 독립 선열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넋을 기리고 기뻐해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성조기와 일장기, 남의 나라 국기를 흔들며 광화문에서 설치는 모습을 독립 선열들이 하늘에서 보고 무엇이라 말하였겠는가. 세종로 거리에서 흔들어대는 남의 나라 국기를 보며 자부심이 아니라 자괴감에 젖었을 독립운동가들의 눈빛이 떠오르지 않는가.


지금이 어느 때인가. 올초부터 팬데믹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죽음과 통곡으로 울부짖고 온 국민들이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숨죽이는 무서운 여름이 아닌가. 코로나19가 대구 신천지에서 번진 것처럼 다시 살아나면 국가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데 전광훈은 일을 또 저질렀다. 광화문 집회를 굳이 열겠다며 자신의 교회에서 (사랑의 제일교회라 하나 혹자는 코로나 제일교회라 부르는 이도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연일 집회를 열고 유투브로 실시간 중계를 하였다. 교회 예배를 참칭하며 유투브로 광화문 집회 참석을 선동하고 방역을 무시하며 코로나 바이러스를 양성하였다. 코로나 환자들도 자신의 교회에 와서 기도를 받으면 낫는다고 거짓을 선포하며 실제로 환자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이 몸소 코로나에 전염되었다.

 

아베 수상에게 우리나라 국민들이 위안부 문제를 거론해서 죄송하다고 언론을 향해 외친 전광훈의 친구, 엄마부대 주옥순 여사와 광화문 집회에서 마이크를 주고받더니 그녀 또한 코로나에 전염되었다. 전광훈 교회발 코로나19는 광화문에서 다시 불씨가 붙어 전국으로 퍼졌다. 일 년 내내 방역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보건복지부와 전국의 간호사들, 질병 전파로 인해 쓰러지는 수많은 자영업자들과 상인들, 일용직 노동자들과 젊은 알바생들, 대다수의 국민들은 참다 참다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기독교를 개독교라 부르니 교회도 개망신이다. 가석방 시 국가와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내던진 거짓선지자여. 유신정권 구국선교회 최태민의 후예여. 사회적 약자들에 등을 돌리고 기득권 세력과 손잡은 자칭 영원한 우파여.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엄중한 상황에도 파업에 나선 반히포크라테스 기득권 세력인 집단이기주의자들을 데리고 이제 우리들 눈앞에서 썩 사라져라! 당신은 국민들께 넙죽 엎드려 용서를 빌어도 빌어도 이제는 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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